제 19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는 출마선언문에서 ‘서민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서민대통령은 홍 지사가 꿈꾸는 서민들이 잘사는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개념이다. 홍 지사가 대통령이 되려는 궁극적인 목표가 서민들이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며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홍 지사는 어려운 유년 생활을 보냈고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오신 어머니는 자식이 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종 때까지 외손녀들을 돌보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홍 지사는 경남 창녕의 빈농에서 태어났다. 식구들은 많은데 땅은 적어 항상 배를 곯았다. 유년시절 보릿고개를 경험하며 장리곡(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배로 받는 등 폭리를 취하는 서민 착취제도)의 매정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삶의 터전을 찾아 초등학교 6년 동안 다섯 번이나 전학을 다녔다. 대구 신암동의 셋방은 비만 오면 물이 찼다. 어머니는 새벽에 길을 나서면 해질녘이 돼서야 사과를 한 광주리를 살 수 있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 그렇게 사온 사과를 작은누나와 여동생이 난전에서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밤마리 강변에서 살 때는 잦은 홍수로 흉년이 들어 어머니가 달비장수를 해서 번 돈으로 생계를 꾸렸다. 달비는 가발을 만드는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말한다. 어머니는 여자들이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으기 위해 경남일대 농촌을 발품을 팔며 이를 모아 수집상에 갖다 줬다.
고향인 창녕남지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 생활고는 대구 신천동, 신암동, 창녕읍을 거쳐 합천 하천부지에 터전을 잡으며 살 때 까지 계속됐다. 그런데 이 오막살이마저 이웃의 방화로 인해 불똥이 튀어 전소하면서 다시 울산 월세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홍 지사는 초,중,고등학교 때까지 점심시간이면 항상 수돗가에 있었다.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학교매점에서는 단팥빵을 팔았지만 사먹은 기억이 없다. 대신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반찬도 없는 보리밥은 실컷 먹었다. 그래서 홍 지사는 지금도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 항상 쌀밥을 먹고, 단팥빵을 즐겨 찾는다.
홍 지사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결혼한 후에도 신혼살림을 봉천 7동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할 정도로 가난했다. 이런 가난에 대해 그는“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금까지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 하나를 밝힌 것이다. 실제로 가난을 경험한 사람이 그들의 아픔을 알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민정책을 입안, 추진했으니 효과적이지 못했다.
앞으로 홍 지사가 그것을 하겠다며 내건 슬로건이 서민대통령이다. 경남도지사 재임시 서민복지와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에 모든 행정력을 동원한 경험과 경륜을 살려 대한민국의 서민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